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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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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도설(太極圖說)
自無極而爲太極, 무극으로부터 태극이 나타난다
太極動而生陽, 태극이 움직여서 양(陽)을 생성하고
動極而靜, 움직이는 것(動)이 지극해서 고요(靜)하며
靜而生陰, 고요함이 음(陰)을 낳고
靜極復動. 고요함이 지극하면 다시 움직인다
一動一靜,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한 것이
互爲其根, 서로 그 뿌리가 되고
分陰分陽, 음으로 나뉘고 양으로 나뉘어
兩儀立焉, 두 가지 모양이 서게 된다
陽變陰合, 양이 변해 음을 합하여
而生水火木金土, 수화목금토(水火木金土)가 생성되며
五氣順布, 이 다섯 가지의 기운이 골고루 펼쳐져
四時行焉, 사계절(四時)이 행해진다
五行一陰陽也, 오행(五行)은 하나의 음양이요
陰陽一太極也,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니
太極 本無極也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육상산은 주렴계가 도가 사상을 익혔고 또한 무극이라는 말은 원래 도가의 용어일 뿐 유가에는 없는 용어라는 점을 들면서,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 무극은 태극이다)’을 ‘자무극이위태극(自無極而爲太極: 무극으로부터 태극이 나왔다)’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주자는 도가 철학에서는 유(有)와 무(無)를 둘로 나누어 보지만 주렴계는 하나로 보고 있기 때문에 태극과 무극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의 무극은 ‘무궁(無窮)’의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반박하였다. 즉 ‘무극이태극’을 ‘무궁무진한 태극’으로 해석하여 ‘무극’은 ‘무궁무진’이라는 뜻으로서 태극을 수식하는 하나의 형용사 차원으로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가와 도가의 사상을 익혔지만 철저하게 이 사상들을 배격했던 주자로서는 무극에서 태극이 나왔다는 것을 인정해버리면 우주의 근본에 대해서 도가가 유가보다 더 본질적인 차원의 개념을 설정했다는 것을 허용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이는 유학자로서 허락할 수 없는 문제였다. 주자가 도가 철학 개념인 무극과 유가 철학 개념인 태극은 서로 관계가 없으며, 주렴계가 「태극도설」에서 ‘무극’이라는 말을 쓴 것도 도가의 무극을 말한 것이 아니라 태극이라는 말을 꾸며주기 위해 ‘무궁무진’이라는 뜻으로 쓴 것일 뿐이라고 항변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주자에게 있어서 무극 태극 논쟁은 도가에 대한 유가의 자존심 문제였던 것이다.
이에 반해 같은 유학자이기는 하지만 학문에 대해 좀 더 유연한 입장이었던 육상산은 신유학의 창시자 주렴계가 도가 철학의 영향을 받았으며 유가 철학인 태극보다 도가 철학인 무극이 더 앞서는 개념이라고 말하고 있다. 서로가 입장을 바꾸지 않는 가운데 이 논쟁은 끝나버렸고, 이후 거의 800년 이상 주자 신봉 학자들과 육상산 신봉 학자들 사이에서 이 논쟁은 계속 되었다.
김병환은 주자학 연구를 대표하는 서적으로 평가받는
후외로(候外廬, 1903~1987)의 『송명리학사(宋明理學史)』*********
진고응(陳鼓應, 1935∼)의 『역전여도가사상(易傳與道家思想)』
장입문(張立文, 1935∼)의 『송명리학연구(宋明理學硏究)』**********
같은 유명한 서적들이
주렴계의 『태극도설』 첫 마디를 아예
‘自無極而位太極(무극에서 태극이 나왔다)’으로 단언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 학자들은 주자와 동시대의 인물 홍매(洪邁, 1123∼1202)가 저술한
『송사』 「주돈이」전에 실린
주렴계의 『태극도설』에 ‘자무극이위태극’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점을 근거로,
무극에서 태극이 나왔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김병환은 이 학자들이 ‘자무극이위태극’을 고집하는 이유가 결국은 청나라 초엽의 학자 모기령(毛奇齡, 1623∼1716)47 때문이라고 한다. 후외로, 진고응, 장입문 같은 대가들의 주장도 원래는 모기령에 의해 제기된 설이었다는 것이다. 모기령은 홍매가 쓴 『송사』 「주돈이」전에 실린 주렴계의 「태극도설」에 ‘자무극이위태극’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으나, 홍매가 쓴 『태극도설』 판본 대신 주자가 ‘자(自)’와 ‘위(爲)’ 두 글자를 삭제하여 ‘무극이태극’으로 바꾸어 놓은 ‘장사건안본(長沙建安本)’을 주렴계의 『태극도설』 표준으로 널리 퍼뜨렸고, 그 결과 ‘무극이태극’으로 잘못 알려지게 되었다고 주장한 인물이었다.
물론 주자는 『대학(大學)』의 고전을 수정한 전례가 이미 있었기 때문에,48 그가 주렴계의 원래 저작도 뜯어 고쳤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주자(당시 59세)는 1188년 홍매(당시 66세)가 쓴 『송사』 「주돈이」전을 보고 거기에 실린 『태극도설』에 ‘무극이태극’ 대신 ‘자무극이위태극’이라 적혀 있는 것을 보고는 이미 전해져 내려오는 『태극도설』에 ‘무극이태극’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왜 엉뚱하게 기록하였는가 힐난한 사실이 있다. 그리고는 홍매에게 원래 전해져 내려오는 대로 ‘무극이태극’으로 수정할 것을 거듭 요구하였지만 끝내 관철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戊申(1188년) 6월, 나(주희)는 옥산에서 한림학사 홍매를 만나 그가 편수하고 있는 『국사(國史)』를 얻어 볼 수 있었는데, 그 중에는 주렴계, 정명도와 정이천, 장횡거 등의 전기와 주렴계의 『태극도설』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렴계의 전기는 여기에서 처음으로 씌어졌으니 이는 사관이 주렴계의 중요성을 인정하였다는 것으로 그 공이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태극도설』의 본래 구절은 ‘無極而太極’인데 홍매는 ‘自無極而爲太極’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어떤 근거로 ‘自’와 ‘爲’ 두 글자를 첨가했는지 모르겠다. … 만약 이 두 자를 첨가한다면 주렴계같은 성인(聖人)에게 누가 되고 후학들에게 의구심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이에 두 글자를 삭제할 것을 요청했으나 불가하다고 한다.49
自無極而爲太極
自無極而爲太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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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jw.history.go.kr/id/SJW-F07060210-02400
승정원일기 725책 (탈초본 40책) 영조 7년 6월 21일 임자 24/24 기사 1731년 雍正(淸/世宗) 9년
故其時史官, 載此圖說於周子本傳, 而誤以無極而太極五字改之曰, 自無極而爲太極, 加自爲二字, 則文義大差, 本旨全失, 故朱子, 於洪邁爲史官時, 亟請其改修矣。其時如陸九淵, 亦以無極字爲疑, 與朱子反復論辨, 此亦看得而字失其旨, 故滯於名言如此矣。上曰, 以圖說看, 則果似於太極上, 復有無極之義矣。致雲曰, 圖中, 亦自明白, 指畫陰陽圈中, 一小白圈, 便是太極, 而所謂無極之眞也。上曰, 聞此言, 始覺分明矣。論動而生陽章。
故其時史官, 載此圖說於周子本傳, 而誤以無極而太極五字改之曰, 自無極而爲太極, 加自爲二字, 則文義大差, 本旨全失, 故朱子, 於洪邁爲史官時, 亟請其改修矣。
그래서 그때 사관은 이 도설(圖說)을 주돈이(周子)의 본전(本傳)에 실었는데, 무극(無極)·태극(太極) 다섯 글자를 잘못 고쳐 “자무극이위태극”이라고 바꾸며, “자(自)”라는 글자를 두 글자로 더 넣었다. 그러면 문맥의 의미가 크게 달라지고 본래의 뜻을 완전히 잃게 되므로, 주자(朱子)는 홍매(洪邁)가 사관이던 시기에 급히 그 수정을 청하였다.
其時如陸九淵, 亦以無極字爲疑, 與朱子反復論辨, 此亦看得而字失其旨, 故滯於名言如此矣。
그 당시에 육구연(陸九淵)도 무극이라는 글자를 의심하고 주자와 반복해서 논쟁했으며, 이 역시 “자”자를 넣어 의미를 잃어버린 뒤 말에만 머무르게 되었다.
上曰, 以圖說看, 則果似於太極上, 復有無極之義矣。
임금(上)이 말하기를, 도해(圖說)를 보면 과연 태극 위에 또 무극이라는 뜻이 있는 듯하다.
致雲曰, 圖中, 亦自明白, 指畫陰陽圈中, 一小白圈, 便是太極, 而所謂無極之眞也。
치운(致雲)이 말하기를, 도 안에서도 스스로 명백하고, 음양 원(陰陽圈) 안에서 한 작은 흰 원을 가리키면 그것이 바로 태극이며, 이른바 무극의 진실이다.
上曰, 聞此言, 始覺分明矣。
임금(上)이 말하기를,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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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jw.history.go.kr/id/SJW-F22090160-01900
승정원일기 1008책 (탈초본 55책) 영조 22년 9월 16일 기유 19/19 기사 1746년 乾隆(淸/高宗) 11년
宋史立周敦頤傳, 其中載太極圖。而史官就加數字曰, 自無極而爲太極, 先儒譏之矣。無極太極之上, 加自字爲字, 則是無極太極, 爲兩件物, 恐無是理矣
송사(宋史)의 주돈이전(周敦頤傳)에는 태극도(太極圖)가 실려 있다. 그런데 사관(史官)은 ‘自無極而爲太極’이라는 글자를 추가하였는데, 이전 선비들이 이를 비판하였다. “무극(無極)·태극(太極)” 위에 “자(自)”라는 글자를 더하면 무극과 태극이 각각 두 개의 물건이 되는 셈인데, 이는 도(道)에 어긋날까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